학교는 한창 전공 진입 시기였다. 각 커뮤니티에는 이 과는 어떻냐면서 질문들이 올라왔고, 그 과에 대한 전공생들의 생각들이 답변되어 있었다. 나는 전공 예약생으로 입학했기 때문에 전공 진입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국어를 재미있게 배워서 대학을 지원할 때 국어국문학과로 지원한 것이 전부였다. 내가 이 학문을 전공해서 나중에 어떻게 해야지, 하는 청사진도 없었고, 단지 문법 공부와 고전 시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국어국문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흔히 전공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공 수업을 들을 때에도 아무 생각 없이 시간표를 짰다. '나는 문학이랑은 역시 안 맞아. 나는 어학이지'라는 생각으로 시간표를 짰다. 물론 어학 수업만을 들은 ..
요즘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예전에는 미래에 대해 고민이라도 했는데, 그 고민은 정말로 흘러넘칠 만큼 해서, 이제 더 이상 할 고민도 없을 정도이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 봤자 전역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다. 전역하고 바로 2학기에 교환학생을 갈 수 있을까, 복수전공을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 취업을 할 수는 있을까, 하는 스물세 살 대한민국 청년의 흔하디흔해 빠진 고민이다. 얼마 전까지 교환학생에 대해 불안이 컸는데 이제 그마저도 없다. 아직 토플 점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1월 2일 혹은 3일에 내가 치른 토플 성적이 발표되는데, 어떻게 성적이 나올지 하나도 감이 잡히지 않아서 걱정도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몇 십 개의 파견 대학 리스트 중에서 국어국문학과로 갈 수 있는 대..
나는, 습하지는 않지만 물기 어린 공기의 냄새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고 촉촉이 젖어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그 느낌이 나는 좋다. 모든 것에는 그만의 냄새가 있다. 불린 쌀로 정성 들여 뜸을 들인 밥 짓는 냄새, 파도처럼 밀려드는 시원한 바다 냄새, 은은히 방 안에 퍼지는 작약 냄새, 그리고 그의 옆에 있으면 문득 다가오는 그의 냄새……. 하물며 내가 쓰는 물건들에도 내 손때 묻은 냄새가 날 터이다. 비가 오면 후각이 예민해지는 것인지, 비가 오는 날이면 그 특유의 냄새들이 나에게 물밀듯이 떠밀려 온다. 물을 머금은 공기를 타고 오는 것일까, 비가 오면 나는 저마다의 향에 취한다. 봄은 그렇게 찾아왔다. 봄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봄은, 비와 함께 왔다. 시원한 밤공기도 같이. 어느덧 익숙해진 텁텁..
이용택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게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가사 중 일부이다. 나는 ‘이웃’이라는 단어를 보면 이 노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이 밴드를 좋아하는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이 노래의 가사가 참으로 와 닿기 때문에 이 노래를 ‘이웃’하면 떠올린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기는 싫고,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은 표현하고 싶어 이 노래의 화자는 헤드폰으로 노래를 들으면서 춤을 춘다.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개인주의의 시대에서 타인과 부딪히지 않고 공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웃이란 관계를 참 많..
어떤 해이든지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는 없었겠지만, 나에게는 유독 지난 2016년이 다사다난하게 느껴졌다. 제주도에서 새해를 맞으며 스물둘의 새해 소망을 빌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다 지나갔다. 내 일 년을 돌아보자면, 1월과 2월에는 정신없이 2016학년도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했었고, 3월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유를 즐겼고, 4월에는 군에 입대했다. 나는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타인의 시간은 흐르는데 나만 멈추어 있다는 생각에 자주 빠져들고는 했다. 그것은 마치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격랑의 시기를 견디어내고 보니, 나는 한 층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무던히도 어린 나지만, 짧고 편협한 생각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이 되었지만,..
왜 우리는 미워하며 사는가 - 미워해야 행복해지는 존재들 - 나는 오늘 당신을 미워하였다. 당신의 뒤에서 당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떠벌렸으며 당신의 앞에서는 당신이 싫은 티를 내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런 나를 미워할 것이다. 당신은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릴 것이며 내 앞에서는 내가 싫은 기색을 보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계속 미워할 것이며, 당신도 나를 미워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의 미움은 터지게 될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우리의 안에서 사그라들거나, 서로의 미움이 핵분열을 일으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킬 터이다. 이쯤에서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미워하면서 사는가? 실제로 나에게 오늘은 ..
구보씨의 진정한 행복을 기원합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이용택 * 핵심어: 행복, 고독, 고뇌 1. 서론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가난한 소설가인 구보가 하루에 걸쳐 산책을 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구보는 그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산책에 나섰다. 그렇다면 구보는 왜 행복을 찾는가. 그 이유는 구보가 고독하기 때문이다. 구보는 고독을 강하게 느낀다.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산책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산책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이 그의 외로움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그의 고독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고독의 근원은 그가 지식인이라는 점에 있다. 그는 지식인이다. 이는 구보의 지식이 소설가라는 점에서와, “고등학..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이팔청춘의 사랑- 과 한국 고등학교의 현실을 비교하다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이용택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소재에 매우 익숙하다. 어떤 문화적 장르를 접하든 ‘사랑’이 빠지는 것은 찾아보기가 드물다. 노래를 들으면 온갖 사랑 이야기에, 드라마를 보든, 영화를 보든 러브라인은 빠져서는 안 되는 소재이다. 그만큼 사랑이 통속적인 소재이며, 대중의 인기를 얻는 소재이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 에도 애정소설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도 사랑을 참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애정전기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은 ‘김 진사’와 ‘운영’의 슬픈 ..
‘식사’는 「응답하라 1994」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 소통의 매개체와 가족의 회복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이용택 한국인의 주식은 밥이다. “우리의 힘은 밥이다.”, “어디 가서 삼시세끼는 꼭 챙겨 먹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밥’이라는 것이 쌀로 만든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밥’은 하나의 음식을 떠나서 하나의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흰 쌀밥만이 밥의 전부가 아니다. 빵도, 라면도 음식 모두가 밥이 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밥은 중요하다. 오죽하면 인사말 중 하나가 “밥 먹었어?”이고 안부 인사가 “밥은 잘 먹고 다니지?”이겠는가. 한국인에게 있어서 밥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 야구 해설가 허구연 위원은 야..
Hi. 노란 동그라미에 바둑알 두개, 포춘쿠키 하나. 오리가 나 대신 말을 한다. 저 오리인지 병아리인지 하여간에 신기하게 생긴 새가 말을 하다니. 참 세상에는 놀라운 일도 많다. 분명 저 조동아리에서는 꽤액 하고 짐승의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사람의 말을 하고 있다. 요즘 더워서 내가 헛 것이 들리나. 그런데 내 귀가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아까까지만 해도 LG 트윈스가 6연승을 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말이다. 아, 중계는 못 들었나. 하여튼 간에 내가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귀를 완전히 먹은 건 아닌듯 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내가 귀를 먹을 사람은 아니다. 말하는 오리라니. 당장이라도 '세상에 이런일이'나 '동물농장'에 제보를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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