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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씨의 진정한 행복을 기원합니다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용택

 

* 핵심어: 행복, 고독, 고뇌

 

1. 서론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가난한 소설가인 구보가 하루에 걸쳐 산책을 하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구보는 그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산책에 나섰다. 그렇다면 구보는 왜 행복을 찾는가. 그 이유는 구보가 고독하기 때문이다. 구보는 고독을 강하게 느낀다.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산책을 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산책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이 그의 외로움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그의 고독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의 고독의 근원은 그가 지식인이라는 점에 있다. 그는 지식인이다. 이는 구보의 지식이 소설가라는 점에서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불하고 온 내 아들”이라는 소설 내의 구보에 대한 묘사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고뇌한다. 그의 직업에 대해서,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 그는 고뇌한다. 이러한 고뇌로 인해 그는 고독을 느끼며, 결론적으로 그는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가 과연 행복을 찾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결론부에서 하도록 할 것이다. 물론 소설 말미에서 구보는 ‘그는 거의 그것에서 불쾌를 느끼는 일도 없이, 오직 그 생각에 조그만 한 개의 행복을 갖는다.’라고 생각하며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정한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에서 언급할 것이다.

 

2. 본론

 1) 행복을 찾아서

  구보는 매일같이 집을 나선다. 구보의 모의 생각 “대체 그애는 매일 어딜 그렇게 가는겐가”에서 구보가 매일 산책을 하러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산책은 매우 일상적이다. 그는 매일 아침에 집을 나서서 밤늦게 돌아온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걱정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밤에는 잘 들어오는지 그의 어머니는 이러한 것들을 걱정한다. 그러나 구보는 어머니의 이러한 걱정에 신경을 쓰나 별 반응은 보이지 않은 채로 밖으로 나간다. 구보는 밖에서 많은 것들을 관찰한다. 거리의 풍경, 지나가는 사람들, 그의 벗……. 그중에서 구보는 행복을 찾는다. 그가 살고 있는 사회는 다양하게 행복을 정의한다. 그 사회에서 행복은 보통 참한 여자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는 구보와는 반대되는 속성들이다. 구보는 스물여섯이나 들었지만 아직 여자가 없다. 또한 구보는 가난하다. 월급을 받지 않는다. 그는 가끔씩 글을 팔아 돈을 번다. 그는 은연중에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내보인다. “자기는 결코 여자를 행복하게 하여 주지는 못할게라고”라는 대목에서 자신의 불행을 인정한다. 그러하기 때문에 구보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고 그들에게서 행복한 모습을 찾는 것이다. 구보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은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진정으로 공감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그들을 비판적으로 본다. 황금광 시대를 비판하며 물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의 사상과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행복이 다르기 때문이다.

 

 2) 고독한 사람, 구보

  그렇기 때문에 구보는 고독하다. 그는 외롭다. 그는 스물여섯 해 동안 결혼하지 못하였다. 물론 그동안 그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는 하였다. 그렇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그는 불행하였다. 그는 진정으로 사랑한 여자에게는 사랑받지 못하였으며,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술김에 그가 여급에게 관심을 표해 보지만 여급은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도 작중에 드러난다. 이렇듯 그는 개인적으로 고독한 사람이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적으로도 고독한 사람이다. 그는 이 시대의 고독한 지식인이다. 그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교양이 없는 사람들에게 모멸감을 표한다. “구보는 그 시골 신사가 노파와의 사이에 되도록 간격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리고 그를 업신여겼다”라는 대목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물질만능주의로 가득 찬 이 시대, 황금광시대를 비판한다. 그는 그의 중학 시절 동창, 열등생이었던 사람을 만나고 그를 불편하게 생각하였다. 구보는 ‘맞은편에 앉은 사나이의, 그 교양 없는 이야기에 건성 맞장구를 치며, 언제든 그러한 것을 연구하여 보리라 생각한다.’라고 생각하기도 하였으며, ‘남자는 여자의 육체를 즐기고, 여자는 남자의 황금을 소비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게다’라고 생각하기도 한 것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이렇듯 그는 이 시대에서 홀로인 사람이며, 또 스스로도 고독한 사람이다.

 

 3) 지식인으로서의 고뇌

  구보의 이러한 고독의 근간에는 그가 지식인이라는 사실이 있다. 그는 1930년대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일본으로 유학도 다녀온 엘리트이다. 당대에 그만한 학력을 가진 사람은 정말로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직업은 소설가이다. 그는 소설에 쓰일 제재를 찾기 위해 거리를 돌아다니며, 또 그가 돌아다니면서 본 사람들의 모습을 그의 대학노트에 적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는 여러 고민을 보인다. 일례로 구보가 화신상회 앞에서 본 젊은 부부가 있다. “구보는 그들을 업신여겨 볼까 하다가, 문득 생각을 고쳐 그들을 축복하여 주려 하였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구보는 그들을 단지 돈을 자랑하려고만 하는 철없는 사람들로 생각을 하였다가,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져 축복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구보의 내면에서는 황금광 시대에 대한 비판 의식이라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치열하게 갈등을 빚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먹고살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볼 것인지,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계속 글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의 가난과 외로움, 즉 그의 고독에는 이러한 그의 고뇌가 숨어있는 것이다.

 

3. 결론

  그래서 구보는 행복을 찾았을까. 작품 말미에 보면 그가 조그만 행복을 느낀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 조그만 행복은 그가 좋은 소설을 쓰리라고 마음먹은 이후에 생긴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는 그가 좋은 소설을 써서 그의 어머니를 봉양하고, 또 그 역시도 괜찮은 생활을 하리라는 기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보의 행복, 자신을 위한 행복이 아닌 어머니를 위한 행복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이미 작중에 나왔다.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렇다. 행복은 지극히도 주관적인 것이다. 구보가 생각한 것이 그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리고 구보가 현재 행복을 느낀다면, 그는 진정으로 행복한 것이다. 구보 씨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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