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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글.

말을 해요 말을

bonjourmint 2016. 8. 9. 23:25


  Hi. 노란 동그라미에 바둑알 두개, 포춘쿠키 하나. 오리가 나 대신 말을 한다. 저 오리인지 병아리인지 하여간에 신기하게 생긴 새가 말을 하다니. 참 세상에는 놀라운 일도 많다. 분명 저 조동아리에서는 꽤액 하고 짐승의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사람의 말을 하고 있다. 요즘 더워서 내가 헛 것이 들리나. 그런데 내 귀가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아까까지만 해도 LG 트윈스가 6연승을 하는 걸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말이다. 아, 중계는 못 들었나. 하여튼 간에 내가 지금 타자를 치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귀를 완전히 먹은 건 아닌듯 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내가 귀를 먹을 사람은 아니다. 말하는 오리라니. 당장이라도 '세상에 이런일이'나 '동물농장'에 제보를 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요상한 생물체가 이상하지도 않나 보다. 이런 일은 예삿일인 양 그냥 평소처럼 생활한다. 뭐지 이 사람들은. 내가 이상한 건지 세상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다. 달리가 시공간이 흘러내리는 그작품을 그린 이유가 달리 있는게 아니다. 달리도 열대야가 무지막지하게 싫었나 보다. 어휴, 에스파냐는 얼마나 더웠을까. CS 기후라서 살기 좋니 뭐니 해도 여름엔 고온 건조하다. 똑같이 더웠겠지 뭐. 그나저나 달리 아저씨는, 말하는 오리가 나올 줄 알았을까. 달리 아저씨도 나와 달리 말하는 오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달리가 달리 보인다.


  시간을 달려서 5년 전으로 갈 수만 있다면. 5년 전의 우리는 개가 말하고, 오리가 웃고, 갈기가 없는 사자가 헛기침을 한다. 거기 동물농장인가요? 네 동물농장인데요. 여기 말하는 개랑 웃는 오리랑 헛기침 하는 사자가 있는데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동물농장에서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더위를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 더위만 파는 무한 리필집이라도 다녀 오셨나. 더위 팝니다. 공짜이고요, 무한 리필이에요. 더위 먹을 때까지 드세요. 열대야는 서비스. 아무튼 5년 전에는 우리는 개가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말을 하는 건 사람이지 동물이 아니었다. 표정을 짓는 것도 사람이었고, 눈을 흘기고, 헛기침을 하는 것도 전부 사람이었다. \(^_^)/ 사람 만세! 근데 그로부터 1년이 지나자 사람 중심의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 중심의 세상이 바뀌다니 -_-.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_-^ . 모든 생명체가 같이 살아가는 지구라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이 중심이어야지. 안 그래? 그렇지 않았다. 응, 그래 라는 말이 나올 법도 했지만 얄궂게도 이 변해버린 세상에 다 적응해 버렸다.



  이제 이 세상은 동물들의 세상이다. 그동안 사람들의 기에 눌려 미처 펴지 못 한 그네들의 끼를 발산할 때가 되었다. 춤 추고 노래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신이 났다 신이 났어. 누가 보면 서커스인 줄 알겠다. 그 '누가'는 이미 답이 나왔다. 나다. 나 혼자 그렇게 보고 있다. 서러워라. 다른 이들은 어떻게 볼까. 아마 그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볼 것이다. 동물들이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상이니까. 그러면서 사람들은 말을 잃어 갔다.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는데, 굳이 자신들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말하는 것은 자신들만의 특권이 이제 아니라며, 그들의 기득권을 내려 놓았다. 동물들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 엄청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한 번 일을 할 때마다 버는 돈은 초코 20에서 30정도? 그들의 화폐 단위이다. 내가 초콜릿을 30개나 먹으면 난 다시 굴렁쇠처럼 굴러 다니겠지. 낙석주의. 저기요, 제가 언덕길을 내려갈 거예요. 그러니까 조심하세요. 왜냐고요? 전 굴러 다니니까요. 그들은 돈을 받으면서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표정으로, 때로는 행동으로 말이다. 사실 고생도 파이어니어들이 했지 그 사자놈은 데뷔할 때부터 톱스타였다. 역시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나는 아직 말을 할 수 있다. 내가 아직까지 말을 할 수 있는 데에는 내가 아직 동물들을 완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도 어느새 동물들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고용인이 되어 있었다. 피고용자들은 하나씩 습관을 바꾸어 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들 없이 말하기는 조금 어색할 정도이다. 동물들이랑 같이 사는 평화로운 지구인가? 그렇지만 말이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말은 해야지. 그렇게 누가 대신 말해주는 것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내 얘기는 내가 해야지. 남이 해 줄 수는 없다. 동물이 사람을 대신해서 편하게 내 뜻을 전달하더라도, 그 생각의 본질은 나한테 있는데 말이다. 시바. 시바견은 말을 못 하지만 행동은 한다. 그 시바가 내 감정을 전달해 준다. 근데 그 시바가 말야, 내 뜻 전체를 전달하지 못 한다. 그 친구는 시바이지 내가 아니란 말이다. 말을 하자, 말을.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말을 하자. 동물들이 계속 일만 하고 쉬지 못하는 건 동물 학대이자 피고용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 자 동물 여러분,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셨으니 어디 좋은 데 휴가라도 다녀 오세요. 이제는 내가 말할게요. 잠시라도 좋다. 그러니 말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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