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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글.

찜통이다 찜통

bonjourmint 2016. 8. 8. 23:23



  덥다. 밖은 더워도 너무 덥다. 안에 있어도 덥다. 따가운 햇볕은 얼마나 뾰족한지 바늘로 나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어제, 그제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6도란다. 처음에 듣고 체온인 줄 알았다. 이렇게 더운 날은 하루로 충분한데 일주일이 넘게 사람을 고생시킨다. 사람들만 고생일까 동물들도 고생하겠지. 밖에 나가기가 싫다. 아니 움직이기 싫다. 그저 침대에 누워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책이라도 읽고 싶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반겨주는 그 뜨거운 입김이 싫다. 사람을 이렇게 짜증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참 재주다. 이런 재주를 가지지 말고 다른 좀 유용한 재주를 가졌다면 이 찜통은 뭐라도 됐을 것이다. 어떻게든 세상을 바꿨으리라.


  오늘 아침은 만둣국이었다. 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는 냉동만두일 것이다. 나는 차라리 냉동 상태의 만두이고 싶다. 차갑게 꽁꽁 얼려져서 옴짝달싹 못 하더라도 차라리 냉동인간이고 싶다. 냉동실 안은 춥더라도 덥지는 않겠지. 그 안에 있으면 더워서 땀은 안 흘리겠지. 그런데 말이다, 그 냉동만두라는 것이 그만 뜨거운 사골국에 빠지고야 말았다. 만둣국이다. 불행한 만두는 팔팔 끓는 물에 들어가 푹 익혀질 것이다. 누가 만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나. 나는 문득 내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며칠 전, 나는 오늘 아침으로 만둣국이 나온다는 종이를 보고 정말 기뻐했다. 내 평소 취향은 평양식 만둣국이지만 사실 어느 지방 식이든 상관 없다. 만둣국이 나온다는데 뭐가 대수랴. 그 진한 고기의 맛, 입 안을 은은히 감싸는 고기의 부드러운 질감과 고소함, 거기에 맛을 다채롭게 하는 채소까지! 손만두면 어떻고 냉동만두면 어떠랴. 이북식이든 이남식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념의 대립은 전쟁이 멈추고 나서도 60년이 넘게 계속되지만, 만둣국은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것도 평화통일을 말이다. 만두는 참 위대한 음식이다.


  불행한 만두를 만든 사람은 만둣국을 다 먹고 나서야 눈에 보였다. 그릇 바닥에 남은 기름에 내 얼굴이 둥둥 떠있었다. 사실 만둣국을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니다. 내가 만둣국을 아침 메뉴에 넣으라고 지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행복한 만두의 삶을 무참히 짓밟고야 말았다. 냉동실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을 만두 - 사실 그곳은 겨울일 터였다 - 를 매서운 Af 기후의 아프리카 열대우림에 던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라 만두의 이동을 보자면, 만두는 적어도 EF기후에서 삽시간에 Af기후로 이동한 것이다. E와 A 사이에는 B, C, D라는 세 개나 되는 알파벳이 존재한다. 몇 초만에 기후 구분 다섯 단계를 오간것이다. 만두는 그를 감싸고 있던 봉지에서 사골 국물로 떨어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원망했을까. 나를 원망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를 원망했을까. 원망도 아니라면 어떤 감정으로 떨어졌을까. 나는 만두의 이 숭고한 희생정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만두는 성인(聖人)이었음이 틀림 없다. 성인이 만두로 환생하여 자신의 희생정신을 만인에 알리려 했던 것이리라. 나는 그것도 몰라보고 나를 감히 만두에 비교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가시지 않는다. 이 열기는 분명 리우 올림픽의 열기일 것이다. 그 넘치는 에너지 - 열정과 정열의 삼바 - 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광장에서 시작되어 거리거리마다 퍼져 경기장을 감쌀 것이다. 그 힘은 해류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볐으리라. 그러다가 북태평양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반도에도 그 열기를 전하였으리라. 해류가 힘이 떨어지면 바람이 그를 도왔을 것이다. 올림픽의 열기로 전세계가 들썩거릴 때 이 세계적 흐름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그 열기에 동참한 것이다. 어차피 올림픽을 보려면 날밤을 새야하는데 이 참에 밤 새기 편하라고 밤도 덥게 만든 것이다. 지구의 올림픽을 향한 이 놀랍고도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이 지구는 찜통이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그 찜통에서 가열되고 있는 하나의 만두이다. 만두가 먹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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