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쓰다./글.

[감상문] 7년의 밤

bonjourmint 2016. 8. 4. 23:35


7년의 밤, 정유정, 은행나무, 2011



<감상문>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 「7년의 밤」

- '현수'와 '영제', 두 인물의 "장벽"을 비교하다. - 



  요즈음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배우를 꼽으라고 하면 송중기, 강동원, 김수현과 같은 '꽃미남'형 배우들도 꼽히지만 조진웅, 류승룡, 마동석과 같은 '아재파탈'형 배우들도 손에 꼽힌다. 2016년 초를 강타한 드라마 <시그널>의 주인공인 조진웅은 <시그널>의 히트로 더욱 큰 인기를 얻으면서 텔레비전과 스크린을 오가며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38사기동대>의 주연 마동석도 마찬가지이다. 1000만 영화 <베테랑>에 카메오로 출연하여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나타냈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던 그였으나, 얼마 전 개봉한 <부산행>의 성공으로 그도 이제 '믿고 보는 배우'로 거듭났다. 한편, <7번방의 선물>, <광해>, <명량> 등 숱한 1000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 내던 류승룡은 2016년에 들어서는 잠잠하다. 2015년에 개봉한 <도리화가>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면서 그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큰데,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7년의 밤>이 차기작으로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서두가 길었지만 소설 「7년의 밤」은 최근 들어 다시 주목받는 소설이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하였듯이, 류승룡, 장동건 등의 배우들의 출연이 확정되면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부차적 요소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본 작품은 그 스스로 가치를 지니는 소설이다. 소설은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고 하는 두 남자, '최현수'와 '오영제'의 오랜 갈등을 섬세한 묘사로 첨예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사실 앞서 말한 '최현수'와 '오영제'가 아닌 '최현수'의 아들 '최서원'이다.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7년간 세상의 끝으로 몰린 '서원'이 작중 배경인 '세령호'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실질적으로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서원'의 이야기가 아닌 '현수'와 '영제'의 이야기이다. 결국 '서원'이 세상의 끝으로 몰리게 되는 것도 그 둘의 갈등에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본 작품을 논할 때 '현수'와 '영제'의 이야기가 빠지면 작품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두 인물을 "장벽"이라는 주제로 비교해보고자 한다. 두 인물의 비교에 앞서 우선 장벽이라는 낱말을 정의해 보자. 장벽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가리어 막은 벽", "둘 사이의 관계를 순조롭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한편 심리학 용어로서의 장벽은 다음과 같다. "마음속에 좋지 않은 경향이 있을 때, 여기에 대하여 형성되는 방어 기제". 즉, 장벽이란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다른 대상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높게 쌓은 벽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수'와 '영제'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바로 위에서 언급하였듯, '현수'와 '영제', 이 두 남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장벽을 둘렀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현수는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하다. 그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도 강하다.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이나 팔을 잃고 돌아왔다. 현수는 술주정뱅이 아버지가 행사하는 폭력에 노출되며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부인과 자식을 때렸으며, 심지어는 자식의 꿈마저 가위로 잘라 짓이겨놓았다. 그러한 그의 아버지가 실수로 우물에 빠져 죽어갈 때, 현수는 악에 받쳐 아버지의 구두를 우물에 던졌다. 그 밤 그에게 꿈결처럼 들리던 "현수야, 현수야……"라고 하는 목소리는 실제로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이는 현수에게 크나큰 트라우마가 되어 '용팔이'라고 하는 왼팔마비증세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용팔이에 대해서 아는 것을 원치 않았고, 특히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그의 아내인 '은주'에게도 그의 장벽의 문을 열지 않았다. 다음 대목은 그가 은주에게마저도 장벽을 개방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무리 애써도 공유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였다.[각주:1]


  한편 영제도 심리적 장벽을 그의 마음속에 높고 길게 둘렀다. 그는 그가 정한 대로 그의 세계 안에 있는 것들이 존재해야 했다. 이는 그의 성장 배경에서 기인한다.


  "나로 말하면, 세령강 백릿길을 호령하던 대지주의 아들이야.

(중략)

여하튼 중요한 건,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세령마을 '도련님'이었다는 거야."[각주:2]


  영제는 세령강 유역의 대지주의 3대 독자로 태어나서 왕자처럼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그가 원하는 대로, 정한 대로 모든 것이 위치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 되었다. 그의 성채는 매우 견고하여서, 다른 사람이 이를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려고 하면 바로 "교정"하여 그만의 세계를 지켜낸다. 그의 교정은 쉽게 설명하면 폭력이다. 즉, 그는 힘으로, 폭력으로 그의 단단한 장벽 안을 지켜내는 것이다.


  두 남자의 장벽 사이에 존재하는 두 번째 공통점은, 그들의 장벽은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현수'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아들 '서원'이다.


  "지금에야 깨달은 거지만, 지난 6년이 내 삶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절이었어. 꿈도, 욕망도, 삶의 의미도 다 잃어버렸지만…… 서원이가 있었거든. 그 아이는 내 삶에 마지막 남은 공이야."[각주:3]


  전직 야구선수의 현수에게 자식인 서원은 "공"이다. 야구에서 공이 없으면 게임이 성립할 수 없다. 배트, 글러브가 있어도 공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수가 서원을 공에 비유했다는 것은 서원이 없으면 그의 인생은 성립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의 아들을 지켜내려고 하였다. 그가 댐의 수문을 개방한 것도 결국 그의 아들을 살리려고 한 행동이었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만은 그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와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서원은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그의 장벽을 더욱 공고히할 수 밖에 없었다. 아래의 대목은 그의 굳게 닫힌 장벽과 결심을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다짐한 게 있어. 나는 내 아이한테 우리 아버지처럼 하지 않겠다고."[각주:4]


  '영제'는 그의 세계가 그의 의지대로 유지되는 것을 소망했다. 그리고 그의 세계의 중심에는 그의 딸 '세령'이 있었다. 그가 가족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로 여기든, 자기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존재이든, 어쨌든 그에게 가족은, 그리고 세령은 그의 세계의 핵심이었다. 그는 자기 세계가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가족을 지키려고 하였고, 이를 위해 자신의 세계에 높은 성벽을 쌓았다. 그의 전처인 '하영'은 그의 성향에 대해서 앞서 언급한 내용을 '승환'에게 편지로 전달한다.


  "남편은 세상에서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그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야,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에게 아내와 아이는 '자기 것'의 핵입니다. (중략) 그것이 흔들린다는 건, 자기세계의 핵심이 손상당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남편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각주:5]


  위와 같이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두 남자의 장벽에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두 인물은 장벽으로 침입하려는 자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영제'는 장벽을 침입하려는 자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응징을 가한다. 그만의 세계를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되는 자에게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공격적으로 대한다. 일례로 '승환'이 그렇다. 승환은 영제의 딸 '세령'이 죽기 전, 영제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후 밖에서 기절한 세령을 병원으로 데려간 적이 있었다. 영제에게는 승환의 행위가 자신의 장벽 안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행위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제는 세령이 죽은 후, 세령을 죽인 범인으로 승환을 가정하고 추리를 시작하였다. "이제 승환을 의심할 유일한 근거는, 그놈이 아닐 리 없다는 자신의 고집뿐인 것 같았다."[각주:6]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 영제는 승환을 처음부터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추리를 하였다. 하지만 승환이 세령을 죽인 진범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에게 엄벌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폭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딸에게도 "교정"이라는 명목으로 심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의 교정은 대략 이런 식이다.


 그는 기어를 당기듯, 움켜쥔 목을 끌어당겨 세령을 일으켜 앉혔다. 곧장 '교정'을 시작했다. 세령은 제 얼굴로 날아드는 주먹을 멍하니 쳐다봤다. 영제가 주먹을 거둬들였을 때, 세령은 몸이 뒤집힌 채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중략) 영제는 세령의 머리를 벽에다 들이박아 버렸다. 세령은 들이박힌 반동으로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벌어진 입안에선 석류 알 같은 알맹이 두 개가 튀어나왔다. (중략) 대관람차는 세령의 뺨을 스치고 날아가 책상 모서리를 때렸다. 텅, 소리와 함께 쇳조각이 돼서 떨어져 내렸다. 세령은 미소를 띤 채로 굳어졌다. 눈물방울 하나가 뺨을 타고 떨어졌다. 허벅지 사이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는 흰 블라우스자락을 노랗게 적셨다.[각주:7]


  영제는 자신의 딸에게 주먹을 날리고, 머리를 잡아 벽에 들이박고, 쇳덩이를 집어던졌다. 그는 그의 장벽 안으로 침입하려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가족도 무참하게 대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장벽을 무너뜨린 '현수'에게는 이보다도 더 심한 응징이 있으리라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오영제가 원한 건 팀장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 전부였다. (중략) 멀쩡한 인간은 아니라고 봤지만 일가족의 목숨을 대가로 받겠다고 나설 만큼 미쳤을 줄은 몰랐으니까.[각주:8]


  나는 그의 손가락에 낀 요요였다. 던졌다가 당기고 말아 쥐었다가 멀리 날려 보내면서 그는 7년을 기다린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 정착하는 걸 막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겠지. 떠돌이로 만들어야 영원히 사라져도 궁금해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덤으로 사소한 보복행위라는 즐거움도 누리고. 자기 딸을 죽인 자의 아들을 맘 편히 살게 놔두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각주:9]


  영제는 현수를 죽이려고 한 것은 물론 그의 가족 전부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현수의 아들인 '서원'은 죽이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여 차근차근 복수를 진행하였다. 그의 장벽을 건드린 대상에게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단히 공격적으로 임한 것이다. 반면, 현수는 영제와 달리 자신의 장벽 안으로 침입하려는 자에게 그다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장벽은 "그만의 세계"를 지킨다고 하기보다는 그가 감추고 싶은 상처를 감추는 속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장벽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그는 장벽 안의 세계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면, 그들을 공격하기 보다는 그의 내면 속으로 더욱 깊숙히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부끄러워 했고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장벽을 허물고 싶어 하였다. 그가 "용팔이"를 없애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것도, 승환에게만은 사건의 진실을 알리려고 하였던 것도 그의 장벽을 허물고 싶어 하였기 때문이다. 앞의 말과 모순이 되는 것 같지만, 현수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은 동시에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어했던 것은 작품에 나와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꿈속의 남자로부터 서원의 신발을 지키는 일은 팀장의 절대과제였을 것이다. 서원의 신발을 호수에 던진다는 건, 아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일이었을 테니. 전날 밤 서원의 신발을 세탁기 안에 감춘 것도, 그 위에 물을 담은 대야를 올려놓은 것도, 그런 의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으리라.[각주:10]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여자아이와 싸우는 게 나았다. 어린 시절, "현수야"하고 부르던 우물 속 목소리와 싸웠듯이. 그러므로 버텨야 했다. 시간이, 시간이 다 해결할 것이다.[각주:11]


  그가 자신의 트라우마와 싸우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고 싶어했다는 것은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정말 간절히 그의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장벽 안에 있는 존재를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데에 용기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령을 죽인 후, 그가 원래 갖고 있던 내적 갈등과 자신이 범인이라는 부담감이 더해져 더욱 큰 고통을 받은 것이다.



  1. 7년의 밤, 정유정, 은행나무, 2011, 242쪽 [본문으로]
  2. 위의 책, 289쪽 [본문으로]
  3. 위의 책, 376쪽 [본문으로]
  4. 위의 책, 241쪽 [본문으로]
  5. 위의 책, 475쪽 [본문으로]
  6. 위의 책, 234쪽 [본문으로]
  7. 위의 책, 104~105쪽 [본문으로]
  8. 위의 책, 439쪽 [본문으로]
  9. 위의 책, 478쪽 [본문으로]
  10. 위의 책, 378쪽 [본문으로]
  11. 위의 책, 218쪽 [본문으로]

'쓰다.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을 해요 말을  (0) 2016.08.09
찜통이다 찜통  (0) 2016.08.08
[감상문] 장국영이 죽었다고?  (0) 2016.07.29
[감상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6.07.28
[감상문] 은비령  (0) 2016.07.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