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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 응답하라 1994

bonjourmint 2016. 8. 18. 22:57


‘식사’는 「응답하라 1994」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가?

 - 소통의 매개체와 가족의 회복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용택


  한국인의 주식은 밥이다. “우리의 힘은 밥이다.”, “어디 가서 삼시세끼는 꼭 챙겨 먹어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밥’이라는 것이 쌀로 만든 음식이 아니어도 좋다. ‘밥’은 하나의 음식을 떠나서 하나의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흰 쌀밥만이 밥의 전부가 아니다. 빵도, 라면도 음식 모두가 밥이 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에게 밥은 중요하다. 오죽하면 인사말 중 하나가 “밥 먹었어?”이고 안부 인사가 “밥은 잘 먹고 다니지?”이겠는가. 한국인에게 있어서 밥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 야구 해설가 허구연 위원은 야구 해설을 할 때면 “제가 메이저리그의 누구와 밥을 먹었는데 이렇다더라”하는 말을 습관처럼 하며, 2015년 올해에는 「식샤를 합시다」라는 드라마의 두 번째 시즌이 tvN을 통해 방영되었다. 이처럼 식사는 생존을 위한 행위를 넘어서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았다.


  「응답하라 1994」에서도 ‘식사’ 행위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 작품에서 식사는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 창구로서 기능한다. 「응답하라 1994」에 모든 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바로 ‘식사’ 장면이다. 여기서 식사는 식탁에 차려진 한 상의 음식을 먹는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둘 이상이 모여서 무언가 음식을 먹는 행위를 식사라고 정의하겠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식사를 하면서 소통을 한다. 작중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하는 모습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신촌 하숙’의 인물들이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는데, 이곳은 그들만의 소통 공간이다. 그들은 식탁에서 소통하면서 친밀감을 형성하였다. 처음에는 밥을 먹으면서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않던 인물들이 밥을 먹으면서 친밀도를 높였고, 20년이 흘러도 만남을 지속하는 친구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식사 장면에서의 의사소통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유사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의사소통이 있으며,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식의 의사소통이 있다. 먼저 신촌 하숙이라는 유사가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상호 작용을 하며 의사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하겠다. 신촌 하숙의 구성원들은 식탁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하며 교감을 한다. 식탁은 그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부터 그들의 관계가 시작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대화를 식탁에서 나눈다. 밥 먹으면서 만화책 보지 말라는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그들이 가진 연애 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장소가 식탁이다. 물론 소통의 장소는 식탁이 아니어도 좋다.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각주:1] 둘 이상이 모여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들에게는 어디든 소통의 장소가 된다. 이러한 상호 공유의 식사는 작품 후반까지 등장한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성나정 남편 찾기’ 서사가 진행되어 ‘20대 초반 대학생활의 풋풋함’에 대한 서사가 사라져가기는 하지만, 신촌 하숙의 구성원들은 여전히 음식을 두고 둘러앉아 그들만의 소통을 한다. 또한 성나정 남편 찾기 서사를 진행하는 매개물로도 식사가 사용된다. 작품 초반에 ‘칠봉이’가 ‘나정’에게 “나 너만 보면 왜 이렇게 웃기지?”라고 말할 때 둘은 라면을 먹고 있었다. ‘나정’이 ‘쓰레기’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인지할 때, 그들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각주:2] 남편 찾기 서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도, 나정과 쓰레기의 데이트에는 식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였다. 사랑도 두 사람 사이에 소통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보면, 남편 찾기 서사의 매개물로도 식사가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작품에서 식사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소통의 매개체로도 기능한다. 작품 전개 초반에 식탁에서 ‘쓰레기’는 ‘삼천포’와 ‘해태’의 이름을 헷갈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삼천포와 해태는 서로 자신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자신은 순창이 아니고 순천에서 왔다’고 설명하는 해태와, ‘저는 해태가 아니고 삼천포입니다, 행님’이라고 설명하는 삼천포는 어쨌든 자신에 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2화에서는 본격적으로 작품의 큰 줄기인 ‘남편 찾기 서사’가 등장한다. ‘사윗감 후보 No.X'로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으로 남편 찾기 서사가 시작되는데, 이들에 대한 정보는 식사하는 과정에서 질문의 형식으로 등장한다. 문답식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그들이 사는 곳부터, 그들의 집안 배경까지 공개 된다. 이러한 정보 전달은 작품 내 등장인물 사이에서의 전달과,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정보의 전달의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한편, 「응답하라 1994」에서 식사는 현실에서 붕괴하는 가족 공동체를 드라마를 통해 회복하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각주:3] 요즘 젊은 세대들을 일컫는 말로 ‘삼포세대’가 있다. 삼포 세대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 삼포세대가 등장하게 된 원인은 단 한 가지이다. 돈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젊은 세대들이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돈이 없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것이다. 「응답하라 1994」는 이러한 현실을 ‘식사’를 통해서 극복하려 한다. 이에 대해서 ‘음식의 풍성함’과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을 해보고자 한다.


  먼저 ‘음식의 풍성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작품의 식사 장면은 매우 풍성하게 그려진다. 첫 화에 등장하는 국수부터 이후에 등장하는 대왕잡채, 아귀찜 등 다양한 음식들이 그릇에 그득하게 담겨져 있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들은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음식들은 시청자들의 침샘을 자극하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요소로서 음식이 사용되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엄마가 해주신 정성 가득한 음식’이라는 것이 은연중에 강조된다. 하숙생이 전부 먹고도 남을 음식을 매일과 같이 신촌 하숙의 엄마 ‘일화’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양의 음식은 풍성한 정, 그리고 풍성했던 지갑 사정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94년 당시는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풍족하게 경제생활을 하였다. 가난한 대학생[각주:4]이라도 배불리 먹고 다닐 수 있었던 시대였다. 한편, N포세대는 그들의 주식이라고 할 수 있는 라면, 삼각김밥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다반사다. 작품은 N포세대의 안타까운 현실을 ‘풍성한 식사’로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식사는 ‘단란한 가족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일화’는 그의 딸 ‘나정’이 아파서 집에 누워있을 때, 밥은 먹었냐고 나정에게 전화를 건다. 또한 하숙생들이 밖에서 들어오면 “밥은 먹었지?”하며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밥을 못 먹었다고 하면 그녀는 언제라도 맛있는 밥을 지어서 준다. 작품에는 거의 매 화마다 나오는 말이 있다. “밥 먹어라”이다. 작품 후반 나정과 쓰레기, 그리고 칠봉이의 사랑 이야기가 주된 서사가 되면서, 밥 먹으라는 대사가 등장하는 빈도는 전에 비해서 줄어들기는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작품에서는 식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밥 먹어라’는 자연스럽게 식사 장면으로 넘어가게 하는 도구이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식탁에 온 등장인물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그리고 마치 가족과 같은 모습으로 식사를 한다. 밥을 먹으라는 애정 섞인 한 마디는, 결혼을 포기한 채로 독립한 1인 가구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화목하게 식사를 하는 장면은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지 않는 많은 가족들과 1인 가구원에게 큰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응답하라 1994」는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가족 공동체의 회복을 시도한다.


  1. 본고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도 식사의 일종으로 넣기로 하였다. 어쨌든 술을 마시면서 먹는 안주도 일종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나정은 원래 쓰레기를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였지만, 그녀가 쓰레기에게 다시 사랑의 감정을 느낀 것은 나정이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쓰레기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 이유가 크다. 그 이후 나정은 쓰레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 동생으로만 자신을 대할 때 우울한 모습을 보인다. 요리를 하다가 울적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그 이후 식사를 하며 그에게 외려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본문으로]
  3. 다소 상투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응답하라 1994」의 식사 장면을 통해서 n포세대 담론을 제기한 연구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문으로]
  4. 실제 작품에서 가난한 대학생은 나오지 않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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