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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글.

[감상문] 운영전

bonjourmint 2016. 8. 21. 22:40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이팔청춘의 사랑

- <운영전>과 한국 고등학교의 현실을 비교하다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용택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소재에 매우 익숙하다. 어떤 문화적 장르를 접하든 ‘사랑’이 빠지는 것은 찾아보기가 드물다. 노래를 들으면 온갖 사랑 이야기에, 드라마를 보든, 영화를 보든 러브라인은 빠져서는 안 되는 소재이다. 그만큼 사랑이 통속적인 소재이며, 대중의 인기를 얻는 소재이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대중의 사랑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금오신화>나 <구운몽>에도 애정소설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도 사랑을 참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애정전기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운영전>은 ‘김 진사’와 ‘운영’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이 소설 또한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베스트셀러였을 것이다. <유영전>, <수성궁몽유록> 등 다양한 이름의 이본으로 남아있는 것을 통해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운영전>이 나왔을 시대의 시대상은 어떠한가? <운영전>의 액자 속 이야기는 우리 역사 최고의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그가 살던 시대인 15세기이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함과 동시에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조선의 네 번째 왕인 세종 대에 이르러서는 그 통치 이념이 확립이 되어있었다. 조선에서 받아들인 주희의 성리학은 남녀 간의 구별이 엄격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여성들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억압받았으며, 자유연애사상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음탕한 것이었다. 즉, <운영전>의 주인공인 ‘김 진사’와 ‘운영’은 그들의 뜻대로 사랑을 쟁취할 수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것이다. 게다가 운영의 신분은 궁녀이다. 궁녀는 조선시대에 가장 억압받았던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궁에 들어오면 바깥출입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혼은 물론 남자와의 접촉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 진사와 운영의 만남은 허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계를 돌려 21세기 지금으로 와 보자. 이 시대 이팔청춘들의 연애는 어떠한가? 지금의 고등학생들은 그들의 뜻대로 연애를 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글쎄”라는 대답을 하고 싶다. 물론 요즘의 고등학생들은 연애를 한 것이 발각되었다고 자결을 하여서 그 죄를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생각보다 요즘의 고등학생들은 그들의 사랑에 억압을 받고 있다. 그들이 단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라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서 이러한 억압을 받는 것이다. 이는 매우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성인으로 취급받았다. 그들의 나이에 사랑을 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었다. 물론 그 당시의 열여섯에서 열여덟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열여섯에서 열여덟이면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으로 취급되는 나이였으니 말이다. 그만큼 16~18세는 상당히 내외적으로 성숙한 나이이며, 사랑에 대해서 알 것은 아는 나이이다. 그런데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누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이러한 억압을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연애를 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 친구들과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상당히 연애에 대한 억압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학생들이 연애를 하지 못하게 억압했던 것을 얘기를 해 보겠다. 나는 상당히 자유로운 학풍의 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생회의 3권 분립이 되어 있었고,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를 이끌어가는 학교였다. 그러나 이러한 학교의 분위기 속에서도 연애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는 연애를 풍기문란으로 규정해서, 학생들은 연애를 하는 것을 선생님들에게 들키면 벌점을 받아야 했다. 이 규정은 상당히 엄격했는데, 빈 교실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단둘이 있으면 벌점을 주었다. 둘이서 손을 잡고 교정을 거니는 것도 금지되었으며, 선생님이 느끼기에 두 남녀학생에게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그때부터 그 두 학생은 선생님들의 무한한 의심을 사게 되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교칙이 상당히 부당하다고 학교 측에 항의를 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며 이러한 교칙을 옹호하였다.


  이러한 고등학교의 연애 금지 조항은 비단 나의 고등학교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교칙은 비일비재했으며 남녀공학 고등학교에서도 남자 반과 여자 반을 나누는 경우도 흔했다. 내가 들었던 고등학교 중 연애금지를 가장 강하게 하는 곳은 남자와 여자가 다니는 길을 나누어 서로 접하지를 못 하게 하는 학교였다. 남녀공학 학교에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을 일체 차단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남학생과 여학생이 만나거나 대화를 하기만 해도 벌점을 주어서 경고가 누적되면 불이익을 준다고 한다. 그 나이 대에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임에도 학생들은 단순히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자유를 억압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기에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현대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삶에 거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은 대학을 가는 것에만 집중해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는 한다. 또한 대학을 가지 못하는 경우 학생들은 비싼 돈을 들여 수험 생활을 한 번 더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생 개개인의 감정을 통제해 가면서 공부를 하게 하는 것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옳지 못하다. 범죄자의 인권 문제로도 뜨겁게 토론을 벌이고 있는데 학생들의 연애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수성궁이 융성했을 당시와 현재, 그리고 그때의 인물들을 비교해보자. 물론 두 시기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운영전>의 배경은 성리학이 국가 통치 이념인 왕정 국가 조선이며,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이다. 나라를 이루는 사상적인 기초가 다르고 열여섯에서 열여덟 사이의 나이 대의 삶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일차적인 비교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비교해 보자면 세 가지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두 상황에서 억압을 하는 대상에 차이점이 있다. <운영전>에서 안평대군은 운영과 김 진사를 용서하였다. 안평대군은 연애 감정을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여긴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둘이 사랑함을 알고 크게 노해 그 둘을 죽이려 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둘을 살려주었기 때문에 둘을 용서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요즘 학교에서는 공부에 방해된다며 연애는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수험생이 무슨 연애냐”, “연애할 시간이 있으면 책 한 권을 더 볼 것이다”라는 등 학생의 본분이 공부임을 과하게 강조하는 경향이 크다.


  두 번째 차이점은 사랑의 결과에서 나타난다. 운영은 자신이 김 진사와 사랑을 하여 안평대군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결을 하고 만다. 물론 둘의 사랑은 안평대군에게 인정을 받았고 용서 또한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세간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운영은 안평대군이 자신을 거둬서 공부를 시켜주었는데 이를 배신했다는 생각을 견디지 못해 자결을 선택했다. 그래서 이 둘의 사랑은 죽음으로 끝난다. 반면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은 연애를 했다고 목숨을 끊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의 뜻대로 연애를 하지 못하는 현실에 불만을 표출할 뿐이다.


  마지막 차이점은 연애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있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은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에서는 예와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남자와 여자가 자유롭게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이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궁인이 외간 남자와 사랑을 하는 것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연애는 단순히 공부라는 성취 목표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취급된다. 한국의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볼 터인데, 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 하게끔 하는 것이 바로 연애라는 말이다.


  <운영전>의 주인공들이나, 현재의 고등학생이나 자유롭게 사랑하지 못 한다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공부에 치우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젊은 남녀는 사회 구성 원리상 사랑을 하지 못한 반면,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그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 하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학생들에게 교과서적인 공부만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넘어선 인생 공부를 학생들이 연애를 하면서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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