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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미워하며 사는가

bonjourmint 2016. 9. 15. 23:20

왜 우리는 미워하며 사는가

 - 미워해야 행복해지는 존재들 - 


  나는 오늘 당신을 미워하였다. 당신의 뒤에서 당신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떠벌렸으며 당신의 앞에서는 당신이 싫은 티를 내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미워하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런 나를 미워할 것이다. 당신은 내가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릴 것이며 내 앞에서는 내가 싫은 기색을 보일 것이다. 나는 당신을 계속 미워할 것이며, 당신도 나를 미워할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의 미움은 터지게 될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우리의 안에서 사그라들거나, 서로의 미움이 핵분열을 일으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킬 터이다. 이쯤에서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도대체 왜, 우리는, 미워하면서 사는가?


  실제로 나에게 오늘은 힘든 하루였다. 나를 힘들게 한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겠지만, 나를 힘들게 한 근본적 원인은 결국 미움이었다. 누군가의 안 좋은 모습이 눈에 보이면, 그 모습은 잊히지 않고 계속 내 머릿속을 잠식한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안 좋게 보기 위해 그에 대한 꼬투리를 하나씩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희열을 느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미워할수록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남을 미워하고 그를 헐뜯으면서, 우리의 자존감은 높아지고 우리의 행복도 커진다. 누구를 미워하면서 피로감을 얻겠지만 동시에 행복을 얻는다. 행복을 얻는 데에 약간의 피로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미워하며 행복해졌다. 그렇지만 행복은, 우리가 바라 마지않던 그 행복은, 미워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나.


  옛말에는 이런 말이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정말 많이도 듣던 구절이다. 그 사람이 지은 죄는 미워할 수 있어도, 그 사람 본질 자체는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 뜻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잘 와 닿을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내 신념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최대한 타인의 좋은 면을 보기 위해서 노력을 했고,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혹은 내 머리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였더라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넘어간 것이 다반사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들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최대한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여도, 사실 죄를 미워하면 사람이 미워질 수밖에 없다.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지 않은가. 예수나 공자와 같은 성인이거나 옛이야기에 나오는 현자(賢者)가 아닌 이상 죄만을 미워하기는 힘든 일이다.


  결국 나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미워함'이 우리의 근본 속성이 아닐까.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 혹은 미움받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 엄마들은 이런 말을 한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죠." 싸움이 왜 발생하는가. 미움 때문이다. 사소한 미움 때문에 그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싸움이 일어난다. 누군가는 싸움에서 이기는 반면 누군가는 질 것이다. 이긴 자는 행복을 느낄 테고 불행은 패자에게 돌아갈 것이다. 미움으로 사람은 행복을 쟁취한다. 우리는 이 패턴을 어렸을 때부터 겪었고 이제는 이 패턴에 익숙하다 못해 무뎌졌다. 미움의 행복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누구나 행복을 얻기 위해 미움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말이다. 이 미움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보다는 우리 중 어느 하나만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앞서 말했듯, 미움은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다른 이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에게만 달콤한 과실을 허락한다. 사람들은 그 과실 하나만을 보고 경쟁할 것이고, 또 다른 미움을 낳을 것이다. 승자와 패자가 다시 생길 것이고 다시 미움이 나타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움은 미움을 낳고 그 미움이 쌓여 더 큰 원망과 분노를 이룬다. 원망과 분노는 격렬한 에너지로 표현되어 분출된다. 그것은 우리를 파멸의 길로 인도한다. 승자가 되어 달콤한 행복을 누릴지라도 그 행복은 영원하지 않다. 패자는 승자를 미워하여 그에게 복수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순환은 우리를 상생이 아닌 공멸의 길로 인도한다. 우리가 함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근본적인 속성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를 아예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미움의 씨앗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는 일은 가능하다. 미움의 싹을 잘라내면 미움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우리의 노력이 함께 할 때 우리는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다. 그러면서 '나'라는 개인도 성장할 수 있다. 미워해야 행복해지는 존재에서 미워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존재로 나아가자. 혐오와 갈등의 시대에서 협력과 공존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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