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쓰다./글.

[감상] 경성 모던타임스

bonjourmint 2016. 7. 22. 23:52


경성 모던타임스 - 1920, 조선의 거리를 걷다, 박윤석, 문학동네, 2014



<감상문> 우리의 경성, 우리의 역사

 - 경성예찬, 미화, 문학성을 중심으로 -


  2015년 여름, 또 한 편의 1000만 관객 동원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암살>이다. 극중에 나타나는 경성은 1930년대의 경성이다. 화려한 백화점, 잘 닦인 거리, 서양식 근대 건축물 등이 있던 경성의 모습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었다. 필자는 이전부터 경성의 매력에 빠져있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경성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과거여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드라마나 영화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서 경성은 매력적인 도시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서양식 근대 건축물과 한옥이 조화를 이루고,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지나가는 거리, 문화를 즐기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보고도 매력을 못 느끼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필자의 머릿속에 간직했던 로망과 같은 경성에 빠져들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로망'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날개」, 「천변풍경」을 비롯한 소설들을 탐독하였고, 마침내 「경성 모던타임스」를 읽게 되었다. 필자는 「경성 모던타임스」를 경성예찬, 미화, 문학성의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경성예찬


  리틀도쿄, 1920년대 경성의 별명이다. 화려한 근대도시인 동경을 좇아 경성도 똑같이 발전하였다. 서론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화려한 네온사인, 빨간 벽돌과 대리석이 돋보이는 서양식 건물, 거리를 오고 가는 전차, 카페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과 같은 경성의 모습들은 당시 도쿄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다. 오죽하면 '혼마치(현재 명동)'를 '경성의 긴자(동경의 구역 중 하나)'로 불렀을 정도이니 경성의 조선에서의 위상은 알 법하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읍으로 자리했던 곳,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경성이다. 본 작품은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을 등장시켜 이러한 경성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당시 경성의 모습을 잘 나타낼 만한 유명인 혹은 지식인 계층이다. 

  또한 「경성 모던타임스」는 1920년대의 경성의 풍경을 굉장히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신문 기사에 바탕을 둔 작품이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지 않고서는 우리가 과거를 눈 앞에 펼쳐 보이기란 쉽지 않다. 「경성 모던타임스」는 '유 한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경성 거주민들의 생활상을 독자에게 보여 주었다. '유 한림'의 시선이 닿는 곳이 곧 독자의 시선이 닿는 곳이다. 그가 산책하면서 담아내는 풍경들은 독자들에게도 똑같이 담아진다. 그가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독자에게도 그대로 느껴진다. 2010년대에 살고 있는 필자가 살아숨쉬는 1920년대의 경성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경성을 분석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미화


  과거는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다. 좋은 기억은 더욱 강렬하게 머리에 남고, 좋지 않은 기억은 잊혀지거나 좋은 쪽으로 왜곡되기 마련이다. 결국 1920 경성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경성예찬'에 대해 언급하였지만 이것도 역시 미화된 인식에 불과하다. 2010년대에 이른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사회 문제들이 산재해있다. 소득 불균형, 복지, 주거난, 지역갈등과 같은 문제들이 그렇다. 필자는 경성을 볼 때 경성의 아름다운 모습에 주목을 했었다. 그렇지만 경성도 무한정 아름다운 도시만은 아니다. 어쨌거나 경성은 '식민지 조선'의 중심지이다. 1910년대 경성이 1920년대의 경성처럼 아름다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거리에는 총칼을 찬 순사들이 돌아다니고 경성시민에게는 제한적인 자유마저 누리기 힘든 삶이 연속되었을 것이다. 1930년대, 1940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경성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변화해왔을 뿐이다. 즉, 경성이 그 자체로 자유로운 문화의 도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마냥 경성에 대해서 아름답게만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주의를 준다. 고등학교 때 한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1920년대 일제의 통치방식이 '문화통치'라는 것은 다 알고 있다. 굳이 한국사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의무교육기간의 사회 시간에 '문화통치'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남아 있을 것이다. 경성이 문화의 도시니, 화려한 도시니 하는 것도 결국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다. 본 작품은 경성의 이면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한규설 선생이 등장하고 독립투쟁과 관련된 내용들을 언급하는 것을 통해 화려한 경성의 이면을 은근히 드러낸다.


#문학성


  「경성 모던타임스」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작품이다. 이 작품이 책 분류상 문학에 속하지는 않는다. 1920년대 경성에 대해 서술한 학문적이고 명확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본 작품을 단순히 비문학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이 작품이 가지는 문학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인 '유 한림'은 분명 가상의 인물이다. 저자는 '유 한림'이 완전한 가상의 인물은 아니라고 밝힌다.


"시종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한림'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100퍼센트 가상 인물은 아니다. 한림은 신문 기자를 비롯한 당시의 다양한 군상을 모자이크처럼 합성한 인물상이다."

[각주:1]

100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유 한림'이 가상의 인물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구보'도, 「날개」의 '나'도 실제 작가인 박태원과 이상이 반영되어있는 인물들이다. 가상의 인물에는 얼마든지 실제 인물이 반영될 수 있는 법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문학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가상의 인물이 등장했다고 이 작품이 문학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경성 모던타임스」에는 미약하게나마 서사성이 존재한다. '유 한림'이 경성을 산책하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방식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매우 유사하다. 저자가 이를 의도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서술 방식과 비슷하게 책의 흐름이 전개되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 문학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경성 모던타임스」, 프롤로그, 박윤석, 문학동네, 2014 [본문으로]

'쓰다. >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찜통이다 찜통  (0) 2016.08.08
[감상문] 7년의 밤  (0) 2016.08.04
[감상문] 장국영이 죽었다고?  (0) 2016.07.29
[감상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0) 2016.07.28
[감상문] 은비령  (0) 2016.07.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